삼년을 꽉채워서 '조직'에서 일을 했다. Full-timer로 일하면서 동시에 artist로 활동한다는 것, 거기에 자질구레한 part-timer로서 일해야 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칭찬보다는 채찍질을 해야한다고 느낀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회적 개인들이 '임노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낀다. 예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들을 만나면 그 얼굴에 침을 뱉어 주고 싶을 정도다. 어딘가에서 예술이라는 것은 애초에 '윤리'와 태생이 같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에게는 ''노동은 필수, 예술은 선택'이라는 무거운 '윤리'가 있어서, 그것이 예술과 태생이 같다면, 아마도 무척 권위적인 형님처럼 나를 규율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종종 들곤 한다. 조금 말랑한 머리가 필요하고 조금 더 쾌활한 피가 필요하다.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이년 가까이 매달려 있던 동두천 프로젝트는 그 과정의 치열함과 내적 투쟁을 뒤로하고, 이제는 단정한 갤러리 안에 얼음처럼 갇혀있다. 갤러리 전시에 회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화이트 큐브에 대한 지난한 싸움과 분석과 수정과 협상들은 내가 한마디를 더 보탠다고 마침표가 찍힐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제 많이 '말하고 쓰는'것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다만 지난 2년간의 그 다채로운 순간순간의 사건 혹은 감정과, 이렇게 다양한 레이어의 의미와 사회적 관계들을 모두 다 설명하겠다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가슴속이 묵직해 지는 것 만큼 현상과 물질로 내려앉은 것들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낄 뿐이다. 최종적으로 전시장을 통과하고나면 늘 머리속에 시멘트를 부어버린 것만 같다.
일년을 훌쩍 넘겨버린 현 파트너와의 연애는 기이할만큼 무사하고 평화롭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하는 감정이 넘쳐난다.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이 그 원인 일 수도 있고, 이제는 내가 변했다는 것이 그 원인 일 수도 있다. 나의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고, 나누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다. 배후에 무엇을 감추거나 감정을 감추기도 싫다. 사랑에 대해, 연애에 대해, 관게에 대해 보다 단순해진 느낌이다. 그에게 복잡한 것들을 원하지 않고, 그의 앞에서 내가 복잡한 사람이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그도 그럴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조금은 어정쩡한 여름을 통과하고 있다. 직장에서의 업무나, 작업, 사랑 같은 것들이 나의 삶안에서 매끄럽게 통합되었으면 좋겠는데, 실은 조금 분열적으로 제각각 움직인다. 순전히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다만 한시간이라도 쓸 수 있는 여유가 통 생기질 않는다. 블로그에 길게 글을 쓰거나, 홀연 사라져 버리거나, 혹은 명상을 하거나 달리기를 할 정도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은데 늘 종종 걸음을 하고 있다. 이렇게 종종 대는 것 만큼이나 들쑥날쑥한 날씨하며, 도통 안정감 없는 시국하며, 예민하고 다급해진 신경들이, 혹여 나와 타인에게 크게 상처입히지는 않을지 조바심마저 들곤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혹은 어떻게 살게 될까?
미래는 기획하는 것이 좋을까, 혹은 그렇지 않을까?
본격적인 무더위가 곧 시작된다고 한다.